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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누가 과학에 대한 개론서를 소개해 달라고 하면 주저없이 권하는 책이 바로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다.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어렵게 배웠던 것들을 빌 브라이슨은 너무도 쉽게 풀어내고 있었고, 무작정 외우기만 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아보가드로 수라고 기억하고 있는 6.02 x 10ⁿ (n = 23)이란 숫자의 크기에 관한 내용이다. 6 다음에 0 이 23개나 붙어있다면 과연 얼마나 될까? 그 크기는 세계인구를 60억 명이라고 하고 미국달러화에 대한 환율을 1000이라고 했을 때,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천억달러 씩 줄 수 있는 숫자이다. 이처럼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들이 힘들게 공부했던 과학지식들이 친근하게 다가왔었다는 기억이다.
이 책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또한 그런 기억 때문에 택한 책이다. 빌 브라이슨의 세련된 문장력과 그의 박학다식이 이번에는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역사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일상적인 일을 하기 마련이다. 우리들의 삶과 생각은 일상적인 것들로 가득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 진지하게 고려할 가치가 없는, 말 그대로 일상적인 것으로 간주해 버린다. 하지만 그런 일상적인 것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의외로 그것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빌 브라이슨이 생각한 것은 자신의 집안을 여행해보는 것이었다. 1851년 목사관 건물로 지어진 집안 곳곳을 둘러보며 집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요소가 사생활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여행인 것이다.
집이란 인류가 수렵채취 생활을 끝내고 정주를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공간이다. 인류는 정주생활의 대가로 더 빈약한 식단, 더 많은 질병 그리고 더 이른 죽음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왜 정주를 했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이 정주를 시작한 이래로 집은 곧 가정생활의 무대이자,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집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며, 그것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그지없다. 저자는 그런 집안을 홀에서부터 시작하여 다락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그것들이 감추고 있는 역사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비록 자신이 살고 있는 영국사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우리의 사생활에 감추어진 역사를 알게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그러다 보니 부엌은 곧 식품과 요리의 역사가 되고, 두꺼비집은 난방과 조명의 역사, 식당은 향신료의 역사, 지하실은 건축의 역사, 침실은 성생활과 화장의 역사 그리고 화장실은 바로 위생의 역사가 된다. 저자가 집을 매개로 하여 살펴보는 사생활의 역사는 곧 인간이 점차적으로 편안해지게 된 과정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얼핏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 보이지만, 아니 우리들 스스로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처럼 무심히 지나친 것들이지만, 그것들 모두에는 시대상을 알려주는 역사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둘러보게 된다. 그런데 살고 있는 집이 아파트다 보니 별다른 감흥이 나지를 않는다. 물론 거실이라던지, 주방, 화장실 그리고 침실에는 나름대로 진화해 온 역사가 있겠지만, 판박이처럼 찍어내는 구조가 아닌 가구의 역사가 오히려 더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싶다. 어찌되었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에 숨겨져 있는 역사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온 역사라는 사실이 신선하게 느껴지지만, 전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비교해 볼 때 조금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이야말로 역사가 끝나는 곳이다
인류의 일상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
빌 브라이슨은 어느 날 이상한 사실을 한 가지 깨닫게 된다. 어째서 우리는 역사상의 여러 전투와 전쟁에 관해서는 그렇게 열심히 연구하면서, 정작 역사의 진정한 구성 요소에 관해서는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그가 말하는 역사의 진정한 구성 요소란 바로 수세기에 걸쳐서 사람들이 행한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이다. 결국 인류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들 대부분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 안에서 얼마든지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빌 브라이슨, 그는 자택인 영국 노퍽 주의 오래된 목사관을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면서 집 안의 세계를 둘러보는 내 집 여행 에 나선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돌아다니며 그 각각이 사생활의 진화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화장실은 위생학의 역사가 되고, 부엌은 요리의 역사가 되며, 침실은 성행위와 잠의 역사가 된다. 그 와중에 그는 일상생활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섭렵한다. 건축에서 전기까지, 음식 보관에서 전염병까지, 향료 무역에서 에펠 탑까지, 그리고 치마 버팀대에서 변기까지 어느 것 하나 우연히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아울러 빌 브라이슨은 그런 갖가지 사건과 발명의 배후에 있었던 명석하고 창의적이고 종종 괴짜 같은 사람들에 관해서도 살펴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얼핏 보기에는 우리의 일상생활만큼 하찮아 보이는 것이 또 없는 듯하지만, 사실은 집집마다 어느 한 구석에 어마어마한 역사와 재미, 그리고 흥분이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고 있다고.
빌 브라이슨의 최신작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는 과학 분야를 다룬 베스트셀러 전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의 사회사 판이라 할 수 있다. 전작에서 이 세계와 만물에 관한 파노라마식 서술법을 취했다면, 이번에는 현미경을 통해 인간의 사생활을 들여다본다. 집 안 구석구석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삶의 일상적인 것들을 살펴보며 그것에 숨겨진 역사들을 낱낱이 파헤치는 이 책은 그야말로 사생활의 역사에 관한 거의 모든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빌 브라이슨 특유의 박학다식,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과 위트, 세련된 문장, 탁월한 이야기 실력을 다시 한 번 뽐낸다.
서문
제1장 연도
제2장 배경
제3장 홀
제4장 부엌
제5장 설거지실과 식료품실
제6장 두꺼비집
제7장 거실
제8장 식당
제9장 지하실
제10장 복도
제11장 집무실
제12장 정원
제13장 보라색 방
제14장 계단
제15장 침실
제16장 화장실
제17장 육아실
제19장 다락
감사의 말
참고 문헌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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