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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 떠나가 배운 노래 집 떠나가 배운 노래를 집 찾아오는 밤 논둑 길에서 불렀노라. 나가서도 고달프고 돌아와서도 고달펐노라. 열네 살부터 나가서 고달펐노라. 나가서 얻어 온 이야기를 닭이 울도록, 아버지께 이르노니― 기름불은 깜박이며 듣고, 어머니는 눈에 눈물이 고이신 대로 듣고 이치대던 어린 누이 안긴 대로 잠들며 듣고 윗방 문설주에는 그 사람이 서서 듣고, 큰 독 안에 실린 슬픈 물같이 속살대는 이 시골 밤은 찾아온 동네사람들처럼 돌아서서 듣고, ― 그러나 이것이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어떤 시원찮은 사람들이 끝잇지 못하고 그대로 간 이야기어니 이 집 문고리나, 지붕이나, 늙으신 아버지의 착하디 착한 수염이나, 활처럼 휘어다 붙인 밤하늘이나, 이것이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전하는 이야기 구절일러라. - 정지용, 「옛이야기 구절」 장소성은 시작(詩作)의 근원이다. 배경이라는 말로 단순화할 수 없는 장소성의 개념은 한 편의 시가 탄생하는 모태로써 작용한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라는 정지용의 시(「고향」) 구절에 나타나듯, 장소성은 시작(詩作)이 이루어지는 최조의 지점을 예시적으로 드러낸다. 돌아온 고향이 그리워하던 고향이 아니라는 시인의 이 진술을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우는 상황은 변하지 않은 채 고향에 돌아온 시인을 맞고 있다. 문제는 고향의 자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이라는 시구에 표현되는 대로, 시인은 먼 항구로 떠도는 구름과 ‘같은’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요컨대 고향을 바라보는 자의 마음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시간의 흐름이 개입되어 있다. 자연이라고 해서 변하지 않겠는가. 올해의 자연과 내년의 자연을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시인은 변하지 않은 자연의 상황을 구태여 제시하고 있다. 자연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변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른 상황을 시인은 착잡한 마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정지용은 저 깊은 무의식 속에 새겨져 있는 고향의 풍경으로 시의 장소성을 이끌어낸다. 그에게 장소는 무의식에 새겨진 마음의 장소와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시인에게 지금의 고향,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돌아온 고향’은 ‘그리던 고향’이 아닐 수밖에 없다. 그리운 장소는 지금 이곳에 있는 ‘장소’가 아니다. 지금 이곳의 장소가 그리운 장소라면 시작(詩作)은 이루어질 수 없다. 장소(성)의 부재가 시(작)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단서는 바로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바, 한국 근대시의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장소성의 시학은 무엇보다 이러한 고향-장소성의 부재와 더불어 탐색되어야 하겠다. 위 시에 나오는 화자는 열네 살에 고향을 떠났다가 고달픈 외지 생활을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가서도 고달프고/ 돌아와서도 고달”팠던 이 사람은 “나가서 얻어온 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아버지에게 이야기한다. 아버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어머니는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아들의 말을 듣고 있고, 윗방 문설주에 선 아내는 숨을 죽이고 남편의 말을 듣고 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마을사람들까지 외지에서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이 단순히 고향에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것은 아니니라. 시인은 “그러나 이것이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어떤 시원찮은 사람들이/ 끝잇지 못하고 그대로 간 이야기어니”라고 분명하게 적고 있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그 이전 사람들이 반복한 “시원찮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 시원찮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정확히 말한다면 그런 이야기가 전달되는 분위기를 느끼려고 마을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온 이의 집에 모인다. 시인의 말마따나 고향은 그가 밖에서 얻어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소가 아니다. 고향은 “이 집 문고리나, 지붕이나,/ 늙으신 아버지의 착하디착한 수염이나, 활처럼 휘어다붙인 밤하늘”이 펼쳐져 있는 장소이다. 문고리에도 고향이 있고, 늙은 아버지의 수염에도 고향이 있다. 그것들은 오로지 고향에서만 볼 수 있는 (시적) 대상들이다. 고향은 왜 고향일까? 달리 묻는다면 고향은 (시에서) 왜 장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정지용은 고향의 장소성을 문고리, 밤하늘, 늙은 아버지의 수염에서 찾는다. 그것들이 모여 고향의 장소를 이루고, 그것들이 모여 고향=장소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을 형성한다.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는 이렇게 장소로서의 고향에 하나하나 새겨져 고향=장소의 내력을 만들어낸다. 그 내력이 고향에 돌아온 이의 마음을 즐겁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 옛이야기가 끊임없이 전해지는 곳이 고향이라면,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향」)는 곳 또한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향은 있는 그대로의 장소가 아니라 그곳을 살아간 사람들의 숱한 내력들이 모이고 모여 형성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고향이라는 장소에 내포된 이러한 내력들을 하나하나 시의 세계로 불러낸다. 내력이라고 다 같은 내력이 될까? 누군가의 내력이 있고 또 다른 누군가의 내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향에는 수많은 이들이 펼쳐낸 ‘내력들’이 있는 것이라고 고쳐 말해야 한다. 정지용은 위에 인용한 시에서 마을사람들에게 전해내려온 이러한 내력들을 시어로 표현한다. 고향에 돌아온 사람, 곧 시적 주체는 고향에 돌아오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고향의 내력에 편입된다. 그가 밖에서 들은 이야기는 이미 누군가가 안에서 말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는 고향에서 그 이야기를 반복함으로써 고향에 내재된 장소의 의미, 곧 예전부터 내려온 고향의 내력들을 알게 된다. 이러한 고향의 내력들을 상실할 때, 시인은 고향을 고향으로 느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2. 아들 잃은 슬픔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1권
머리말: 정지용 전집 을 다시 펴내며
1부 정지용 시집(鄭芝溶詩集)
1 바다 1/바다 2/비로봉(毘盧峰)/홍역(紅疫)/비극(悲劇)/시계(時計)를 죽임/아침/바람/유리창(琉璃窓) 1/유리창 2/난초(蘭草)/촉불과 손/해협(海峽)/다시 해협/지도(地圖)/귀로(歸路)
2 오월소식(五月消息)/이른 봄 아침/압천(鴨川)/석류(?榴)/발열(發熱)/향수(鄕愁)/갑판(甲板)우/태극선(太極扇)/카페 프란스/슬픈 인상화(印像畵)/조약돌/피리/다알리아/홍춘(紅椿)/저녁 햇살/벚나무 열매/엽서에 쓴 글/선취(船醉)/봄/슬픈 기차(汽車)/황마차(幌馬車)/새빨간 기관차(機關車)/밤/호수(湖水) 1/호수 2/호면(湖面)/겨울/달/절정(絶頂)/풍랑몽(風浪夢) 1/풍랑몽 2/말 1/말 2/바다 1/바다 2/바다 3/바다 4/바다 5/갈매기
3 해바라기씨/지는 해/띠/산 너머 저쪽/홍시/무서운 시계(時計)/삼월(三月) 삼짇날/딸레/산소/종달새/병/할아버지/말/산에서 온 새/바람/별똥/기차(汽車)/고향(故鄕)/산엣 색씨 들녘 사내/내 맘에 맞는 이/무어래요/숨기내기/비둘기
4 불사조(不死鳥)/나무/은혜(恩惠)/별/임종(臨終)/갈릴레아 바다/그의 반/다른 하늘/또 하나 다른 태양(太陽)
5* 밤/람프/발(跋) 박용철(朴龍喆)
2부 백록담(白鹿潭)
1 장수산(長壽山) 1/장수산 2/백록담(白鹿潭)/비로봉(毘盧峰)/구성동(九城洞)/옥류동(玉流洞)/조찬(朝餐)/비/인동차(忍冬茶)/붉은 손/꽃과 벗/폭포(瀑布)/온정(溫井)/삽사리/나비/진달래/호랑나비/예장(禮裝)
2 선취(船醉)/유선애상(流線哀傷)
3 춘설(春雪)/소곡(小曲)
4 파라솔/별/슬픈 우상(偶像)
5* 이목구비(耳目口鼻)/예양(禮讓)/비/아스팔트/노인(老人)과 꽃/꾀꼬리와 국화(菊花)/비둘기/육체(肉體)
3부 지용 시선(詩選)
1 유리창 1/난초/촉불과 손/해협
2 석류/발열/향수
3 춘설/고향
4 불사조/나무/다른 하늘/또 하나 다른 태양/임종
5 장수산 1/장수산 2/백록담/옥류동/인동차/폭포/나비/진달래/꽃과 벗
6* 노인과 꽃/꾀꼬리와 국화
부록
해설: 정지용의 시, 감정의 절제와 언어 감각/정지용 시 연보/정지용 연보
2권
1권
머리말: 정지용 전집 을 다시 펴내며
1부 정지용 시집(鄭芝溶詩集)
1 바다 1/바다 2/비로봉(毘盧峰)/홍역(紅疫)/비극(悲劇)/시계(時計)를 죽임/아침/바람/유리창(琉璃窓) 1/유리창 2/난초(蘭草)/촉불과 손/해협(海峽)/다시 해협/지도(地圖)/귀로(歸路)
2 오월소식(五月消息)/이른 봄 아침/압천(鴨川)/석류(?榴)/발열(發熱)/향수(鄕愁)/갑판(甲板)우/태극선(太極扇)/카페 프란스/슬픈 인상화(印像畵)/조약돌/피리/다알리아/홍춘(紅椿)/저녁 햇살/벚나무 열매/엽서에 쓴 글/선취(船醉)/봄/슬픈 기차(汽車)/황마차(幌馬車)/새빨간 기관차(機關車)/밤/호수(湖水) 1/호수 2/호면(湖面)/겨울/달/절정(絶頂)/풍랑몽(風浪夢) 1/풍랑몽 2/말 1/말 2/바다 1/바다 2/바다 3/바다 4/바다 5/갈매기
3 해바라기씨/지는 해/띠/산 너머 저쪽/홍시/무서운 시계(時計)/삼월(三月) 삼짇날/딸레/산소/종달새/병/할아버지/말/산에서 온 새/바람/별똥/기차(汽車)/고향(故鄕)/산엣 색씨 들녘 사내/내 맘에 맞는 이/무어래요/숨기내기/비둘기
4 불사조(不死鳥)/나무/은혜(恩惠)/별/임종(臨終)/갈릴레아 바다/그의 반/다른 하늘/또 하나 다른 태양(太陽)
5* 밤/람프/발(跋) 박용철(朴龍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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