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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좋아!

jvjsv 2024. 1. 21. 17:19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32 하루하루 좋은 삶― 바다가 좋아무라카미 야스나리 글·그림,양선하 옮김언어세상,2004.7.10./8000원 두멧시골에 자리한 작은 집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는 길에 늘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오늘 이 길을 이렇게 버스를 타고 달리지만, 그리 멀잖은 지난날까지만 하더라도 이 찻길은 없었으리라고. 조금 멀다 싶은 지난날에는 이 찻길이 여느 흙길이자 거님길이었으리라고. 또는 아무런 거님길 없는 숲길이거나 들길이거나 오솔길쯤 되었으리라고. .. “안녕? 어서 들어와. 무섭다고? 그럼, 그 파란 소라딱지를 주워 볼래?” .. (5∼6쪽) 시골에 길이 난 지 얼마 안 됩니다. 깊은 두멧자락에 길이 놓인 지 얼마 안 됩니다. 1950년대쯤, 전라남도에서도 깊은 시골인 고흥 마을마을에 길이 놓일 까닭이 있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1980년대 언저리에,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고흥 도화면에 택시가 딱 두 대 있었다고 하는데, 1960년대에는 어떤 자동차가 몇 대나 있었을까요. 1940년대에는, 또 1920년대에는, 또 1900년대에는 이 시골마을 삶자락이 어떠했을까요. 전남 고흥뿐 아니라 다른 시골마을도 어슷비슷하리라 느껴요. 조그맣게 이루어진 마을을 벗어나 다른 마을로 찾아갈 일조차 드뭅니다. 굳이 옆마을로 놀러갈 일조차 없습니다. 그러니까, ‘마실’이라는 낱말을 썼겠지요. 어떤 볼일을 보러 나간다 할 적에는 ‘옆에 있는 마을’에 간다 해서 마실이 됩니다. 닷새마다 여는 저잣거리에 간다고도 하지만, 애써 저잣거리까지 갈 일이 드물어요. 따로 돈푼 없어도 스스로 살림을 꾸려요. 굳이 돈푼 있어야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요. 모든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를 조그마한 논밭에서 거두고, 땔감이며 나무를 멧자락과 숲에서 얻어요. 군내버스를 타고 이웃마을을 훌쩍 지나고, 더 먼 이웃마을도 쉽게 지납니다.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에서 읍내까지 군내버스로는 20분이요, 이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 45∼50분입니다. 걸어서 가자면 아마 네 시간쯤 걸리겠지요. 먼 옛날, 구불구불 흙길이요 숲길이었을 때에는 우리 마을에서 읍내까지 대여섯 시간 넉넉히 걸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읍내까지 가기도 벅차고, 읍내로 다녀올 일이란 따로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모두들 이녁 보금자리에서 살림을 꾸리고 흙을 일구며 살았겠지요. 방아를 찧고 베틀을 밟으며 아궁이 불을 때며 살았겠지요. 아이들은 마당에서 흙을 파다가는 이웃집 또래하고 고샅을 달렸겠지요. 숲을 드나들고 멧골을 오르내리며 살았겠지요. 학교라는 데가 없었을 테지만, 내 보금자리가 학교요 이웃집 또한 학교입니다. 냇물이 학교요 바다가 학교입니다. 하늘이 학교이고 숲과 들이 학교예요. 처마 밑 제비집을 들여다보았겠지요. 나무를 타며 새집을 들여다보았겠지요. 숲속에 올무나 덫을 놓았을까요. 봄부터 가을까지 나물 뜯거나 캐러 얼마나 숲과 들을 쏘다녔을까요. 겨울에도 겨울나물 캐러 얼마나 골골샅샅 누볐을까요. .. “어때, 멋지지? 갯민숭달팽이, 흰동가리, 파랑돔, 불가사리, 말미잘, 성게, 성게, 성게, …….” .. (15쪽) 찻길이 넓어집니다. 찻길이 늘어납니다. 자동차가 늘어납니다. 사람들은 더 멀리 오갑니다. 시골을 떠나고 도시로 몰립니다. 시골은 나날이 한갓진 마을이 되고, 도시는 나날이 북적대는 시끌마당이 됩니다. 이제 ‘마실’도 사라지고, ‘나들이’도 따로 없습니다. 나가고 들어온대서 나들이인데, 가볍게 나들이를 하는 일 없이,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부르면 손쉽게 면소재지에도 가고 읍내에도 갑니다. 시외버스를 타면 이웃 큰 도시에도 가고, 이웃 큰 도시에서 기차를 타면 서울이나 부산으로도 휘 날아갑니다. 아니, 읍내에서는 서울이나 부산 가는 시외버스까지 있어요. 흔히 ‘교통이 좋아진다’고 하지만, 무엇이 좋고 누구한테 좋은지 아리송하곤 합니다. 시골사람은 시골 들녘에서 밥과 옷과 집을 얻어요. 시골사람이 도시에서 밥과 옷과 집을 얻는 일이란 없어요. 도시사람은 도시에서 밥과 옷과 집을 얻지 못합니다. 도시에 널린 가게에서 밥과 옷과 집을 다룬다지만, 도시사람 누리는 모든 밥과 옷과 집이란 시골에서 얻어요. 시골에서 일군 밥과 옷과 집을 도시사람이 싼값으로 사들여서 웃돈 얹어 도시에서 다시 사고팔 뿐입니다. 그러니까, ‘교통이 좋아진다’고 할 적에는, 도시사람이 시골에서 밥과 옷과 집을 더 빨리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도시에 세운 회사나 공장에서 부릴 일꾼을 시골에서 더 손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 “아하! 이제는 이 소라게가 좋아졌구나!” (39∼40쪽) 무라카미 야스나리 님이 빚은 그림책 《바다가 좋아》(언어세상,2004)를 읽습니다. 처음에는 바다를 낯설어 하는 아이가 깊고 너른 바다가 얼마나 따스하고 아름다운가를 천천히 느끼며 좋아하는 줄거리를 보여줍니다. 참말, 바다는 따스합니다. 바다는 너와 나를 가리지 않아요. 가방끈에 따라 누구는 등지거나 누구는 품에 안지 않아요. 돈줄에 따라 누구는 반기고 누구는 꺼리지 않아요. 누구라도 바닷물에 발을 담글 수 있어요. 누구라도 바다에서 고기를 낚을 수 있어요. 누구라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어요. 숲도 들도 모두 바다와 같습니다. 숲도 들도 누구한테나 활짝 열립니다. 하늘도 햇살도 바람도 바다와 같아요. 하늘도 햇살도 바람도 누구나 누릴 수 있어요. 울타리가 없는 바다요 숲이며 햇살이에요. 금긋기나 줄세우기를 하지 않는 들이요 하늘이며 바람이에요. 그러나, 사람들이 이루었다는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나 평화나 평등이나 통일이나 자유나 복지나 …… 정작 사랑스럽거나 믿음직하거나 따사롭거나 아늑하지 못합니다. 좋은 마음이 아름다이 빛나지 못합니다. 하루하루 좋은 삶인 줄 느낀다면 얼마나 즐거우랴 싶습니다. 날마다 기쁜 사랑인 줄 깨닫는다면 얼마나 놀라우랴 싶습니다. 봄꽃을 보며 즐겁고, 겨울나무를 보며 기쁩니다. 여름열매를 보며 즐겁고, 가을잎을 보며 기쁩니다. 내 곁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고운 이야기가 싹틉니다. 내 보금자리에서 살가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4346.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바닷물에 몸이 반쯤 잠겼습니다. 파도가 철썩철썩 허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목울대로 차오릅니다.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확, 밀려드는가 싶더니 온몸이 쑤욱 바다로 빨려들어갑니다. 그 순간의 벅찬 느낌을 참 잘 잡아낸 그림책입니다.

어느 여름 바닷가. 손을 꽉 쥔 채 물가에서 꼼짝않고 무슨 생각엔가 잠겨있는 소년이 있습니다. 고래만큼이나 큰 문어가 물위에 반쯤 눈을 드러낸 채 소년에게 말을 걸지요. 안녕? 어서 들어와! 무섭다고? 흐흐 왠지 음흉하게만 보이는 문어, 예쁜 소라딱지로 유혹하면서 차츰 소년을 물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소년은 눈을 깜빡이며 문어를 따라 점차 깊은 물속으로 빨려들지요. 허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목울대로... 그러다 어느 순간 쑤욱 바다로 몸이 빨려들어갑니다. 바닷속에는 정말 별별 생물들이 많네요. 갯민숭달팽이, 흰동가리, 말미잘, 성게, 성게, 성게... 그리고 난 문어야. 알지? 자, 물살 조심하고! 소년은 문어의 안내를 받으며 어느덧 물속 세계에 푹 빠져듭니다.

그림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쿨- 하게 바다의 차갑고 강렬한 인상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년은 첫장부터 끝장까지 큰 표정의 변화없이, 눈을 똥그랗게 뜬 채 소라고동이며, 바닷속이며, 지는 노을을 바라봅니다. 그 눈동자는 마치 어릴 적 우리가 빠져들던 그 이상한 몰입 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구요. 글과 그림을 그린 무라카미 야스나리는 야생 생물을 소재로 한 독창적이고 폭넓은 작품세계를 펼쳐보이는 일본작가로, 89년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에서 그래픽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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